"어디로 가는 거예요?"시적, 비유적 표현이 많아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기 좋다. 인물들에게 주어진 시련들은 강풍을 동반한 자연재해에 빗대어 표현되고, 그 시련 끝에 못내 마주하는 건 '사랑'이라는 은유적 상징 또한 곳곳에 심어져 있다.선천적으로 청각장애가 있었던 설은 하의 기계 심장 소리를 듣지 못했다. 대신에 그들은 '숨결'로 서로의 소리를 듣고, 화훼농원의 손녀딸로 나고 자랐던 하 덕분에 손짓으로 꽃의 이름을 함께 배워갔다. 맞닿은 가슴으로 "오직 하나의 맥박만(75면)"을 공유하던 그들은, 하의 심장 이식수술을 앞두고 이듬해 여름이 채 다가오기 전 모종의 사건에 휘말린다. 그로인해 스스로 불에 타 죽는 선택을 했던 하는, 설을 남겨둔 채로 미련없이 세상을 떠난다.설은 하에게 수백 개가 넘는 손짓의 의미를,여느 때와 별다를 것 없던 평범한 일상의 어느 날, 한 편의 시 같은 정성스런 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소설가 유래혁 작가님으로부터 받은, 신간 서평을 부탁한다는 메일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종종 짤막한 리뷰로 접했던 『수족관』을 집필하셨다기에 약간의 친근감이 일었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의 의지를 북돋아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말씀에 동요했다.애도하는 삶『바람은 도착하지 않는다』는 제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7명의 등장인물들이 얽히고설켜 한 편의 시와 같은 삶을 일궈내는 소설이다. 작가님은 메일에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 소설은 하나의 사랑으로 연결되는 기적과도 같다고. 서평을 통해 작가가 전하려 했던 절절한 이야기를 인물들의 삶에 빗대어 가늠해본다.환상과 은유9면"아까도 말하지 않았느냐. 지금부터는 너는 미래로 가는 게다. 운전대를 천천히 오른쪽으로. 그래. 너무 급할 필요 없다."276면바람과 함께, 천사가 온다. 그녀는 죽음을 직감한다. 모든 고통이 끝나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이상했다. 천사는 결코 우아하지도, 고귀하지도 않았다.노인들과 정비사 아저씨의 아낌없는 조언을 스스로 되새기며, 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친다. 자신만을 기다리고 있을, 엄마가 있는 집으로."자신을 혐오하는 것에도, 무언가를 해낸 것만 같은 묘한 쾌감과 만족감이 있다고요. 그러니까, 더 조심해야 한다고."몇년동안 엄마와 소식도 끊은 채 길 위에서 부랑하던 태는 다행히 혼자가 아니였다. 홀로 감당하기 버거운 짐을 진 태를 알아본 노인들이 그의 곁을 지켜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들에겐 희박했던 '미래'가 있으리라 믿는 마음으로 소년의 새출발을 양껏 지원해준 덕분에 그 또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본 서평은 포스터샵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환상소설을 방불케 하는 이 장면은 훗날 소설의 후반부에 얽혀 있던 인물간의 실타래를 풀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곁의 천사는 과연 존재하는가? 왜 소녀의 아기를 데려갔는가? 여러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하가 말했던 '사랑'이 어떤 의미였는지 가닿을 수 있을 것이다.유래혁 『바람은 도착하지 않는다』 서평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7명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로 '설'과 '하', '태' 3인이 있다. '눈(雪)'과 '여름(夏)' 그리고 '크다(太)'는 의미가 담긴 이들의 이름으로부터 인물의 배경을 대략 유추해 볼 수 있다. 한겨울 눈이 많이 오던 어느 날, 수녀원 병원 건물 앞에서 눈 속에 파묻힌 채 발견된 이후로 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설. 심장 질환으로 심실 보조 장치를 사는동안 평생 달고 살아야 했던 하. 학교에서 만난 둘은 우연한 계기로 서로가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연인이 되었다.조금 솔직한 감상을 덧붙이자면, 루즈해지는 부분도 꽤 있었다. 아마 작가가 인물들 사이의 연결 장치를 고심했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지 않을까 싶다. 다만 흡인력 있는 전개와 시적인 매력 덕분에 문장 단위의 감상 포인트가 많았고, 상징과 비유가 많은 형식적 특징에 비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해서 이야기의 끝엔 결국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17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