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Open greetings
Open greetings 축하 메시지

노출계가 고장나더라도 카메라는 정

Page Info

작성자 sans339 Date 25-08-13 18:49

내용

동두천치과 노출계가 고장나더라도 카메라는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조리개우선이나 셔터스피드 우선처럼 노출계와 카메라 노출값이 서로 연동되는 방식은 아니라서철쭉? 진달래? 연산홍? 니들은 맨날 헷갈리네 ㅋㅋㅋㅋ물줄기가 아닌 물방울을 찍기 위해 셔터스피드를 짧게 했다!끝분수였습니다요즘은 가격이 야금야금 올라서 저렴한 필름은 아니게 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저 길 자체가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 역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인데감도가 100인 필름 중에서는 제일 마음에 들어서 그냥 계속 쓰는 중ㅋㅋㅋㅋㅋ기계식 카메라라는 점내가 지금 설정한 노출값이 맞나 틀렸나 +/O/-의 빨간색 불빛으로 표시해준다튼튼한것도 매우 장점이라2025년 시점에서는 수리난이도 차이가 상당할 것이다#일상적인일상고양이 사진으로 마무리 ㅋㅋ개나리와어디가 고장난거지...를 테스트하려면 또 여기저기 전기를 흘려봐야하는 전자식 고장은처음에야 진짜 말아서 파는 게 저렴한데 색감도 내 마음에는 괜찮아서 썼는데오늘의 카메라는 니콘의 FM2표정 풀어 ㅋㅋ플래그십 모델들도 수동시절에는 1/2000초까지가 끝이었는데그런데 배터리를 넣으면 또 안에 노출계가 달려있어서#필름#필름카메라#필카#카메라#수동카메라#니콘#니콘카메라#니콘필름카메라#니콘FM2#코닥#코닥필름#에어로컬러4#film#filmcamera#slr#nikon#fm2#nikonFM2#kodak#kodakfilm#aerocolor4(필수는 아닌데 없으면 아쉬운 스펙ㅋㅋㅋㅋ)벚꽃과라일락 역광버전ㅋ뭐 어차피 세상사 세월에 장사 없다고개나리에(배터리 들어가는 전자장치인 노출계가 세월 이슈로 많이 고장나는 편)#필름찍는기화그보다 한스탑 더 빠른 셔터스피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장점언제나 항상 유명하고 덕분에 항상 비싼 FM2의 리뷰영상은 여기거기 오늘 쉬니?굉장한 꽃놀이 시즌이었다노을 빛을 받아서 좀 빛나는 분수의 물방울어떤 면에서는 플래그십모델들보다도 더 유명한 니콘의 슈퍼스타다점심시간에 산책으로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서 이런걸 찍을 수 있어서 사진 취미를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다그래도 여전히 색감은 좋고그리고 뭔가 뚱하게 앉아있는이 카메라만의 장점이라고하면 일단 1/4000초를 지원한다는 점과그리고 오늘의 필름은 나의 요즘 최애필름인 코닥의 에어로컬러4의외로 이 두가지를 동시에 갖춘 카메라가 얼마 없다그 내리막길을 기준으로(전광판 바닥면) 수평을 잡아서 온세상이 기울어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노출계 보고 거기에 맞춰 따로 설정해야 하는 것이 조금 불편할 수는 있지만너무 문앞에서 자는 거 아니냐?경상·전라·충청 수영을 총괄했던 통제영에는 300여 년간 208명의 통제사가 재직했으며, 임무를 마칠 때 함께 근무했던 주요 인물의 명단을 세병관(洗兵館&·경남 통영시)에 걸어두었다. 이것을 ‘통제영 좌목(統制營座目)’이라고 하는데 현재까지 48점이 전해진다. 국립해양박물관이 소장한 이종승 통제사의 통제영 좌목. 국립해양박물관 제공 좌목 현판에는 당시 군영의 서열 체계, 조직 및 인원 구성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남아 있어 당시 정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통제영 좌목은 제6대 이경준 통제사(재임 1604~1606)가 세병관을 짓고, 통영이 삼도 수군의 본영으로 자리 잡으며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제영 초기인 선조와 광해군 때 만들어진 좌목은 길이가 4~6m 정도로 크며, 적혀 있는 인원수도 평균 120여 명에 달한다. 좌목에는 직위 및 편제 성명 출신지 등이 자세히 적혀 있으며, 같은 시기의 여타 기록을 함께 비교하면 통제사 막하 군관들의 출신과 활동 등 조선 수군사를 복원하는 데 큰 보탬이 된다. 최근 통영 충렬사가 소장한 통제영 좌목에서 단원 김홍도가 통제영 화원으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국립해양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종승 통제사(재임 1876년 4~12월) 좌목은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29명의 인명과 직책이 남아 있다. 직책은 통우후(統虞候, 통제사 보좌), 군관, 산성중군(山城中軍, 통영성 방위 책임자), 부선(副船) 별장(군선 운영 책임자), 교련관(훈련 담당) 등이 확인되며, 모두 통제영 운영에 깊이 관여한 인물들이다. 통영성을 방비하고 군선을 운영한 군관은 통제영이 위치한 고성 출신을 지속적으로 등용했고, 상급자들은 타지에서 온 벼슬아치들이 근무 후 이동했다.이 가운데 오횡묵(吳宖默, 1834~1906)이란 인물에 주목해 보자. 그는 1874년 41살에 무과 급제 후, 1876년 이종승 통제사의 군관으로 활동한 사실을 좌목을 통해 알 수 있다. 이후 그는 1887년부터 1900년대 초까지 정선·함안·고성·여수·익산 등에서 지방관으로 일하며 자신의 글과 관청에서 중요했거나 안팎으로 일어난 일을 ‘총쇄록(叢鎖錄)’이란 일기로 남겼는데, 19세 동두천치과